동방신기 활동 중단 속 일본, 중국 현지 반응
그 해 3월과 4월 중국 베이징과 일본의 도쿄를 방문했다. 시아준수의 쌍둥이 형 주노(본명 김준호)가 가수로 데뷔하며 쇼케이스를 열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는 특히 시아준수가 형의 데뷔를 응원하기 위해 직접 무대에 오를 예정이어서 더욱 흥미를 끌었다. 일본의 경우, 에이벡스가 현지 활동 중단선언을 한 후 첫 공식석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중요한 뉴스가 될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SM엔터테인먼트가 법원에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등 3인 멤버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동방신기 사태’가 2라운드에 접어든 시기였다. 특히 에이벡스가 동방신기 활동 중단선언 열흘 만에 이들 세 멤버와 독자적으로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유닛 결성을 발표해 세간을 놀라게 했던 때이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동방신기가 한국과 함께 활동의 주요 거점으로 삼았던 일본과 중국에서 현지 언론과 팬들이 ‘동방신기 사태’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그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며 평가하고 있는지, 기사의 시각을 넓혀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사실 그즈음만 해도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 반응 이 외에 팬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녹여낸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주노의 쇼케이스는 양 국 언론과 팬들의 반응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중국] “멤버들에게도 정당한 수익분배 이루어져야”
3월 28일 베이징의 조양체육관. 이른 아침부터 팬들이 체육관 주변을 가득 메웠다. 주노를 상징하는 보라색 모자와 응원문구가 적힌 피켓을 손에 든 표정은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붉은색 형광봉과 풍선을 든 이들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동방신기 사태가 일어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모두 흔쾌히, 혹은 자발적으로 나서 답변해 주었다. 많은 팬들이 “불공정한 계약관계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접해서인지 대부분 한국 연예기획사의 종속적 계약관행을 잘 알고 있었다.
베이징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이청 양은 “동방신기의 분열책임은 일방적인 계약을 체결한 SM엔터테인먼트 때문”이라며 “너무 자신의 이익만 챙기지 말고, 멤버들에 대한 정당한 수익분배도 이루어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친구 모아중 양은 “소송이 제기된 후 인터넷으로 멤버들의 스케줄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1년 365일 모두 일을 하는 것 같았다.”면서 “동방신기에게 가했던 심한 압박과 과도한 스케줄 때문에 오빠들의 건강이 나빠졌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곁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팬도 “우리는 변함없이 오빠들을 기다리겠지만, 그들이 만약 다섯 명의 멤버로 다시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개인 활동을 한다 해도 영원히 사랑하며 응원할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곧 기자회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벌써부터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지 언론의 기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들의 평가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기자들은 “우리도 SM의 불공정계약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계약에 분명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연예정보프로그램의 기자는 “중국에서는 슈퍼주니어 멤버 한경의 소송과 맞물리면서 동방신기 불공정계약 분쟁에 대해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SM이라는 매니지먼트사에 대한 중국 팬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매체의 한 방송기자는 “많은 사람들이 동방신기의 현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면서 “한류의 중심에는 동방신기가 서 있다.”고 밝혔다.
[일본] “한국 연예매니지먼트 시스템의 후진성에 동방신기 희생”
4월 18일. 이번에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쿄돔시티 내 JCB홀에서 열린 주노의 아시아투어 두 번째 이벤트 ‘JUNO JAPAN 1st SHOW CASE 2010 in JAPAN’을 찾았다. 현장에는 4600여명의 팬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주노의 숨어 있던 끼와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길게 줄을 늘어선 일본의 팬들에게 ‘동방신기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을 들어보았다. 팬들은 “이전부터 활동중단에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공식발표를 접하고 나니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고 먹먹해했다.
도쿄에 사는 코구레 씨는 “인터넷 동호회와 블로그 등을 통해 SM과 멤버들이 맺은 불공정한 계약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며 “13년 장기계약이나 천문학적인 위약금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고개를 저었다.
기모노를 입고 현장을 찾은 한 자매는 “소속사의 불공정한 계약논란은 예전부터 불거져 나온 문제 아니었냐?”고 반문하며 “기획사와 소속 아티스트의 일방적이고 봉건적인 관계가 사태가 빚어진 이유”라고 짚었다.
50대의 한 가정주부 팬은 특히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면서 “계약기간이 13년이고, 게다가 군대 기간도 제외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고 놀라워했다. 그는 “이것은 멤버들의 청춘을 담보로 저당 잡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팬들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미유기 씨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너무 많아 어떤 게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팬들은 알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약 150명의 일본 언론사 기자와 한국의 특파원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현지 연예담당 기자들과 동방신기 사태가 빚어진 원인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그들 역시 대부분 “잘못된 계약 때문”이라며 SM엔터테인먼트에 화살을 돌렸다.
그들은 2년 연속 ‘홍백가합전’에 출연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동방신기가 법적 분쟁으로 인해 해체 위기를 겪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쉽게 진정되거나 해결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본 언론들은 특히 동방신기의 분쟁이 일어난 발단원인과 소속사와의 불공정계약 관계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 연예매니지먼트 시스템의 후진성에 동방신기가 희생된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 이번 사건이 연예인의 권익신장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것이며, 소속사의 일방적 관행을 바꾸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사히TV의 한 기자는 “많은 이들이 동방신기 사태는 소속사의 일방적인 계약관계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물 등을 통해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간 동방신기 논란을 심층 보도해 온 니폰TV의 정보프로그램 <줌인! 슈퍼>의 한 관계자는 “13년 장기계약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무리는 아니”라며 “일본 언론도 동방신기의 활동 중단 소식이 전해졌을 때 팬들만큼이나 놀라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연합통신의 한 기자는 개인의견을 전제로 “소속사와의 봉건적 계약 관행 때문일 것”이라고 언급하며 “이만큼의 폭발력과 영향력 있는 그룹이 활동을 중단한다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보도전문채널의 리포터라고 밝힌 한 방송인은 오히려 “한국에서는 13년 계약 체결이 가능한 일인가?”라며 몇 번을 되물으며 “일본에서는 그런 계약관계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연신 놀랍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기사를 정리하며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던 울림이 있었다.
‘외국인들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왜 우리는 모르는 것일까?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애써 진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잠자리에 들면서 낮에 만났던 한 소녀팬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아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의 마음을 꺼내 오빠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정말 많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의 만족이 우선이 아니라, 오빠들의 행복이 먼저예요. 그들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니까요.”